농암집(조선의 학술과 문화를 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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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창협
옮김 송혁기
간행일 2016.08.31.

<한국고전선집>

농암(農巖), 연암(燕巖)과 함께 조선 문학의 제일류로 추대되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의 학설을 절충한 독자적인 학설을 수립하여 조선 성리학을 심화·발전시킨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 김창협의 시와 문장을 엮은 책이다. 문학 창작과 비평 면에서도 탁월한 성취를 보인 김창협이 겪은 삶의 굴곡과 역정을 작품을 통해 따라가 볼 수 있다.

“나는 조선의 문학을 말할 때에 농암(農巖)과 연암(燕巖)을 제일류로 추대하고자 한다.”
1936년에 현상윤 선생이《삼천리(三千里)》라는 잡지에 게재한 글의 일부이다. 연암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이자 대문호인 박지원(朴趾源)의 호라는 사실은 대개 알고 있지만, 그와 동등하게 거론된 농암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농암 김창협은 명문 안동 김씨 가문의 자제이자 노론의 영수 송시열의 제자로서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당대의 주류에 속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쟁으로 인해 아버지 김수항과 스승 송시열이 형벌을 받아 죽게 되자 수십 차례 계속된 관직 제수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고 철저히 처사(處士)의 삶을 살아갔다.
결국 김창협의 삶을 채운 것은 대부분 학문과 문학, 그리고 산수 유람이다. 특별한 이력이나 눈에 띄는 공적이 없으니 그의 삶이 우리의 주목을 끌지 못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김창협은 오늘날 우리의 인지도와는 달리,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 최고의 학자나 문인을 꼽을 때 몇 손가락 안에 들던 인물이다.
조선에서 이루어진 주희 저술에 대한 주석서는 120여 종에 이르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성과다. 경서 본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된 주석과 해석들은 각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하여 더디지만 새로운 진전을 이룩해 갔다. ‘주자로 학문하기’ 역시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스스로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 김창협은 19세기까지도 조선에서 거의 절대적인 주류를 이루었던 주자학에서 최고봉에 오른 대학자이다. 김창협은 매우 정교한 사유와 치밀한 논리, 그리고 섬세한 언어 구사를 통해서 주자학을 한 단계 더 심화시켰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로 오면서 주자학이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보니, 그 안에서 최고봉에 올라 있던 김창협의 학문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송시열의 《주자대전차의(朱子大全箚疑)》에 대한 질문과 김창협 자신의 견해를 담은 《주자대전차의문목(朱子大全箚疑問目)》은 조선 주자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 주는 명저이다. 이제 주자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김창협의 학문 세계를 주목해 볼 때다.
김창협은 당대뿐만 아니라 후대의 많은 비평가들이 숙종대 최고 문장가로 꼽을 정도로 문장가로서의 명성이 매우 높았다. 조선 후기 대부분의 문장 선집에 김창협의 문장이 수록되었는데, 담박하고 정갈한 한시 작품들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문장가로서의 명성은 주로 한문 산문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김창협은 사상적으로 썩 이채로운 작품을 쓴 일도 없고, 정통의 문체를 벗어난 파격을 추구하지도 않았다. 학문적으로 주자학을 고수하고 심화한 것처럼, 문장에서는 한문 산문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당송고문(唐宋古文)을 추구했다. 김창협의 산문은 장르의 규칙과 모범적 전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탁월한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된다.
김창협은 박학한 문예지식을 바탕으로 분석적이고 전문적인 비평 작업을 행한 탁월한 비평가이기도 하다. 김창협의 예리한 비판력과 섬세한 감식안은 이전의 논의와 다른 새로운 문학사적 흐름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당대의 지식과 문화 수용을 선도하고 정계 주류에서 시대의 흐름을 목도할 수 있었던 김창협은 학문적 엄정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조선조 최고 수준의 비평을 제출하였다.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18세기 초입 동아시아의 지적 수준이 갈 수 있는 한 정점을 우리는 김창협의 비평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의 우리가 김창협의 삶과 글을 지금 다시 떠올려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조선 후기의 사상사와 문학사를 보는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창협의 문집《농암집》은 그의 사상사·문학사적 성취를 잘 보여 줄 뿐 아니라, 그가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삶의 굴곡과 역정, 나아가 당시 조선 사회의 정치상·사회상까지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오랫동안 주목하지 못하고 있던 대학자·대문호의 삶과 성취,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