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용과 17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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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명관
옮김
간행일 2014.08.30.

<교양 도서>

담헌 홍대용의 『연기』와 『을병연행록』 깊이 읽기
​여행이 우리의 세계를, 나의 삶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조선의 여행기라면 단연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여행기는 따로 있다. 담헌 홍대용의 《연기》가 그것이다. 《연기》는 1765년 11월 서울을 출발해 1766년 1월과 2월을 중국 북경에서 머물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매일 매일 경험한 것들을 빠짐없이 기록한 여행기이다. 홍대용은 청나라를 여행하고 《연기》와 《을병연행록》이라는 두 개의 연행록을 남겼다. 《연기》는 한문으로 쓴 것이고 《을병연행록》은 어머니와 아녀자도 읽을 수 있도록 한글로 다시 정리한 것이다. 홍대용 이전에도 연행록이라 불리는 청나라 여행기는 많았는데 《연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대 대표 한문학자인 강명관은 홍대용의 두 여행기를 꼼꼼히 살펴 이 여행기가 왜 당시 조선 지식인들에게 큰 논란거리가 되었는지 그것이 이후 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나아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를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그리고 한국인이 고전이라고 여기는 《열하일기》나 《북학의》 같은 책도 연기가 있었기에 등장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홍대용의 여행기가 문제가 된 것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있는 그대로’ 기술했다는 데 있었다. 조선은 명나라를 치고 백 년 넘게 중국을 다스리고 있는 청을 오랑캐라 여기며 비하하고 있었다. 홍대용 역시 청나라에 대해 여느 조선의 지식인과 다를 바 없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방문하고부터는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다. 눈으로 직접 본 것을 외면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기술하였다. 이전에 중국을 방문했던 많은 사람들은 편견과 선입견에 갇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반면 홍대용은 오랑캐라 할지라도 뛰어난 것은 뛰어나다 하고 그간 조선 사람들이 선입견에 사로잡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 오해였음을 밝혔다. 당시 조선에는 중국의 송씨 성을 가진 일가가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저항해 청의 조정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홍대용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니 실제는 조선에서 들은 사실과 달랐다. 그들은 오히려 청 조정에서 벼슬을 하지 못하는 것을 한탄할 뿐이었다. 이 이야기 외에도 홍대용은 중국인의 생활 모습 하나하나를 관찰하면서 그들이 이용하는 물건의 생김새 만드는 방법 쓰임새와 이용의 편리함 등을 세밀하게 기록하였다. 중국의 물질문명에 대해 이처럼 본격적이고 치밀하게 기록한 경우는 홍대용 이전에는 없었다. 청의 발달한 물질문명을 배우자는 북학 담론이 홍대용으로 인해 성립하게 된 것이다. 홍대용은 이전 사람들이 눈과 귀를 닫고 일방적으로 청을 무시하며 현실을 부정한 것에 비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태도는 조선에서 오히려 큰 비난을 초래했다. ‘청은 더러운 오랑캐’라는 인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청의 체제와 번영을 긍정하는 홍대용의 태도는 용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북학이라는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는 계기가 된다.
홍대용의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조선인 최초로 중국의 지식인과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맺었다는 것이다. 그는 1766년 2월 북경에 과거를 보기 위해 와 있던 중국 지식인들인 엄성 반정균 육비 등과 일곱 번의 만남을 가진다. 그들과 청의 정치 문학 사상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대화를 나누고 서로 호형호제하는 우정을 쌓는다. 함께한 시간은 아주 짧았지만 서로 금기를 터놓고 이별할 때에는 눈물을 숨기지 않을 정도의 사이가 된다. 홍대용은 이들과 학문적인 논쟁을 주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조선에서는 절대적인 지위에 놓여 있는 주자의 학설이 중국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것과 주자 이외의 다른 견해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홍대용이 귀국한 뒤 이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책을 엮어 보여주자 조선의 지식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보수적인 인사들은 더러운 오랑캐의 조정에서 벼슬이나 하려는 자들과 교유했다면서 홍대용을 비난했지만 박지원과 그 주변 사람들은 조선의 지식인도 중국 지식인과 사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이로 인해 18세기 말부터 홍대용 주변의 지식인들이 잇달아 중국을 방문했고 홍대용이 열었던 길을 따라 중국 지식인들과 우정을 쌓게 된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관찰도 더욱 정교해지고 예리해졌다. 그 결과 중국의 번영을 보고 배워 낙후한 조선 사회를 개선하자는 대담한 주장도 나오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이 홍대용이 국경을 초월한 우정의 문을 연 데서 출발했다.
홍대용은 상대에 대한 적극적인 관찰과 대화를 통해 편견을 깨고 보다 앞선 세계에 대해서는 배우고자 하였다. 외국 여행이 자유롭고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수백만이나 되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수 또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홍대용이 보여준 태도는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홍대용이 국경을 넘어 우정을 쌓았듯 인종을 넘어 언어를 넘어 국가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대화와 우정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홍대용의 여정을 통해 서로 다른 세계 간의 평화와 공존의 지혜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지은이|강명관
이 시대 대표적인 한문학자이자 문장가로, 공부방 책주산실冊酒山室에서 읽고 쓰는 일을 주로 한다. 특히 일상적이고 사소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들의 역사, 시대적 제약 속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감내해야만 했던 약자들의 삶과 문화를 생생하게 되살려내는 데 관심이 많다. 그는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이 등장하는 사회적 맥락을 다각도로 살피며, 그것의 역사적 의미를 특유의 날카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그의 글은 과거의 역사가 지금 여기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돌이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현재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침묵의 공장』, 『조선의 뒷골목 풍경』,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 『조선 풍속사』, 『성호, 세상을 논하다』 등 다수가 있다. 2008년 제8회 지훈상 국학상, 2010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간행물문화대상을 수상하였다.

차례

책머리에
담헌 홍대용의 여행기가 특별한 이유

담헌 홍대용, 그는 누구인가
서울 부잣집 도련님|궁금한 건 꼭 물어야 하는 청년|생각을 바꾼 만남

조선 사람에게 북경이란
조선 사람의 ‘세계’|누가, 어떻게 북경에 갔을까|오랑캐의 나라

상상한 오랑캐, 마주한 청
꿈꾸던 그곳으로|서울에서 북경까지 56일|1766년의 북경|소문과 진실|옷차림이 뭐라고|이렇게 큰 세계가 있을 줄 몰랐네|그들이 말똥을 줍는 이유|상상한 오랑캐, 마주한 청

북경에서 엿본 세계
미지의 땅, 서양에 대한 호기심|신기한 서양 물건들|외국에서 만난 또다른 외국인들|다시는 문전을 더럽히지 않겠습니다|좁은 틈으로 엿본 서양

국경을 초월해 지기知己를 사귀다
중국 지식인을 찾아서|그토록 찾던 사람들, 엄성과 반정균|목이 메일 뿐입니다|편지에 담은 진심|학문을 이야기하다|금기마저 허문 우정|강남 제일의 인물을 만나다|바다가 마르고 돌이 썩을 때까지|돌아오는 길, 그리고 사람|담헌이 북경에서 구입한 것

담헌이 만든 길
여행이 남긴 것|마지막 편지를 받기까지|뜻밖의 논쟁|새로운 세상을 꿈꾸다|머물고자 하는 사람,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

여행을 마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